
1. 삼림사 방사와 저녁 공양 안내 된 숙박 시설은 ..
혼자 쓰려면 너무 과분한 방. 이런 방이 5개가 연결되어 있는 일자형 건물이 방적이다.
이런 돌 연못이 곳곳에 있고 모기의 온상처럼 보이지만, 이 연못 안에 빠지지 않고 개구리가 살고 있다!
숨겨진 개구리 남자 .. 12마리가 아니다!
이때만 해도 한 마리의 일이라고 생각해 너무 신기했는데…
카메라 확대 기능이 요새별로 발전해도 좋다.
저기 이쪽의 꽃을 많이 심어 두었다.
실제로 걷는 것만으로도 치유된다. 절에 오면 탬파도 봐야 한다. 우리의 이웃에도 있는 후카우시마가 여기도 있는지 궁금했다.
있습니다. 옆 건물을 보면 관음전인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제자들..
삼천불전의 도자기 불상과 응진전의 나하상도 찬양적으로 열어 보았다. 잘 보면서 들어올리는 생각은 .. 어릴 적 읽은 이성계의 위인전에 나오는 이성게가 신세를 졌다는 500나한산의 이야기다. 이성계가 무너진 집에서 서까래 3개를 지고 나오는, 자신의 몸까지 맞추어 왕왕자가 나오는 꿈을 보고 무학대사에게 해몽을 부탁하면 무학대사가 그것은 신왕국의 왕이 되는 꿈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손으로 500나한. 현실적으로는 젊은 무인으로 혈기방위한 이성계에 인내심을 키우려는 의도가 있어, 야심이 없었던 이성계는 500나하를 자신의 손으로 빌려, 굽는 과정에서 셀 수 없게 되는 역경을 이겨내 결국 진보했다. 인물은 인물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 그러나 위인전에서 500나한의 이야기는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성계의 말년에는 왕자의 난이 일어나 아이를 잃고, 또 아이끼리가 서로 반란을 일으켜, 또 그 와중에 자신의 이름을 빌린 반란까지 벌어지지만, 이미 늙어 버려, 세상의 날에 관계하고 싶지 않았던 이성계는 함흥차의 일화를 남긴 운거를 시작한다. 그런데 위인전에서는 이때 이성계가 젊고 적왕이 되고 싶어서 여러가지 고생을 다해 만든 500나한상 앞에서 그 소원이 이루어짐에 따라 발생한 이 동족 산잔의 비극을 슬퍼하고 왕이 된 것을 후회해 희생자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 한 인상에 남았다. 자신의 소원을 위한 노력의 상징인 500나하상 앞에서 그 소원을 바란 것을 후회하고 참회하는 모습.. 그것이 그 위인전에서 준 또 하나의 강한 인상인 요말성초의 묘한 시대적 단절성과 맞물려 그런 느낌이 더욱 강화된 것 같다. 지금까지도 이 도자기로 빌린 삼천불 그리고 도자기는 아니지만 나하상을 보고 있기 때문에 500나하 상 앞에서 눈물을 흘려 기아미타불을 외친 그 위인 전속 이성계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3. 용용 폭포를 보기 위해 등산! 키림사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용룡 폭포가 있는데 나이가 길어지면서 식사가 끝나고 저녁 예비가 있는 6시 전까지 보러 갈 뿐이었다. 5시경 결심하고 출발
길의 모양을 보면 여기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습니까?
바로 키림사 경내가 끝나 경주 국립공원의 영역이 시작되지만, 여기에서는 차가 들어갈 수 없다.
이것도 길인가? 길처럼 보이지만 무언가 무서워.. 어렸을 때 읽은 책으로, 이런 길은 사람의 키보다 낮은 높이의 식물이 잘려 있지 않기 때문에, 이보다 낮은 키의 산수들이 지나가면서 생긴 길로 등산로는 아니지만, 발밑만 보고 걸어보면 무심코 이런 길에 들어가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것은 길이 아니라 길 옆인데 이전에 계곡이 있던 흔적처럼 찍어 보았다.
아직 이렇게 밝고 평평한 길. 용용폭포로가는 길은 거의 평탄하며 직전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잠시 나온다.
좋은 바위 바위. 이 등산로를 만들기 위해 폭파하면서 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다리도 하나 건너갑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쳐 나오는 이곳은 이미 완전 폭포 근처이다. 등산로 안에서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 있는지보다.
이곳은 경주 국립공원 도악산 지구! 그리고 마침내 .. 폭포!
시간을 보면 18분만에 도착했다.
동해안까지 가서 이 산길을 넘어가는 신문왕 일행에 이 폭포는 정말 쉬어가는 곳이었을 것이다. 월성까지의 거리도 적지 않습니다. 폭포의 크기가 유명한 폭포에 비해 조금 소박하지만, 원래 못이었지만 용이 승천하여 만들어진 폭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밝을 때 도착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15분 정도 폭포를 감상하고 또 다시 온 길을 돌아왔다.
나를 폭포로 안내한 다람
그런 바위 아래 틈새 같은 공간은 누가 숨어 있는지 무섭다.
이런 지형은 아무래도 옛 계곡 같구나… 어떻게 하면 태풍 탓에 이렇게 되었는가?
다시 키림사와 경주 국립공원의 경계까지 돌아왔다. 이쪽이야말로 초소가 하나 있는데, 순찰 중이라고 쓰여져 있지만 뭔가 사람이 묵는 곳 같지 않고. 옆에 이런 정체 모르는 구조물도 있어 가 보았는데, 혹시 이전에 사용하고 있던 프세식 화장실일까? 지금 바닥은 모두 낙엽이 쌓여 있다.
「매화를 묻지 말아 주세요」라고 하는 안내문이 없었다면, 나는 이것이 감나무라고도 몰랐는데 ww 드디어 매화가 열려 있었다. 다시 절로 돌아가는 도중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나중에 알아보니 뒤에 어머니가 붙어 온데 한 가족인 것 같다?) 용연 폭포까지의 거리를 물었지만 이미 15시 43분 정도였다. 나는 15분 정도 매우 가볍다는 의미로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때부터는 빨리 어두워질 수 있으므로 아저씨의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였던 것 같습니다. 잠시 방에 쏟아졌지만 6시 저녁 예금에 참석하고 싶어 절망당까지 나왔다. 4. 저녁 예금과 다른 종 6시가 되면 사원은 순식간에 푹 빠져 와서 가는 등산객도 이제 없고, 초파일을 준비하고 있던 신도들도 모두 집에 갔던 것 같았다. 순식간에 이 큰 절에 나 혼자 남은 느낌! 그래도 아직 이 정도에는 남아 있었다.
6시가 끝나는데, 대적 광전에서 저녁 예비를 준비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대적 광전을 두드리고 있지만, 6시가 되면 어딘가가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어들어 보면 종각이 있어, 거기서 스님이 종을 치고 계신 것이다. 어느 쪽이 지나가서 나를 보고 저녁 예금에 오지 않을까 하고, 내가 지금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 스님이 지금 치고 끝나기 때문에 끝이라고 예불하러 갈 때에 따라 넣으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종각의 입구까지 올라가 정성스럽게 승려가 타종을 끝내기를 기다렸지만, 이 절은 종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모두 갖추고 있어 승려가 그 모든 것을 성실하게 해치는 것이다. 채취하는 기둥에 달려 있었다. 사물은 범종, 법정, 참치(물고기 모양의 나무모형), 운판(운상금속판)인데, 나는 이 물건이 함께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처음 본다. 우리 마을의 절에는 확실히 북쪽이 없었던 것 같았고, 구름판은 몸체 작고 존재감이 없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법정 연주도 꽤 길었고, 북쪽만 치는 것이 아니라, 북쪽 테두리의 목각을 사용해 쓰면서 타다닥 소리를 내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수어 연주는 처음 보았지만, 수어가 안이 비어 있기 때문에, 수어 아래 부분에 최을 넣고 목 속에서 휘두르며 부딪쳐 소리를 내고, 운판 연주는 구름 모양의 금속판을 두드리는 것이다. 이처럼 풀셋으로 연주를 하며 업장을 소멸시켜 실제 예금은 6시 반이 되어 시작했을 것이다. 법정 연주까지는 성실하게 잘 들었지만, 종각 앞 연못에 개구리 몇 마리가 있고 거기에 정신이 팔려… 타종이 끝나면 종각에서 나오는 승려를 졸졸 갔다가 당진전에서 가사를 입고 나오기 위해 나와 대적광전에 먼저 들어간다고 했다. 이때는 이미 6시 반경에서 밖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지만, 대적광전 내부는 굉장히 어두워지고 있어 여기서 혼자 예금을 바치는 승려의 오른쪽 구석에서 저도 저녁 예금에 참석한 것이다. 따로 책자를 가져가지 못하고 아는 부분이 나올 때만 따랐지만, 확실한 것은 반야심경과 천수경만 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다른 것이 더 있어, 스님이 끊을 때 나도 끊어져 일어났을 때 일어나 앉을 때 앉았다.
도중에 위기의 시간이 한 번 와서 위기를 넘어도 잠시 나아간 느낌이다. 7시 반 가까이에서만 환불이 끝났다. 5. 아무도 출입하지 않는 절의 밤은 익숙하지 않다. 우리 동네에있는 절입니다.
빛나는 정원 스님은 대적 광전을 정리하고 문을 닫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저는 메인 사원에 올랐습니다. 지금 들어오는 사람은 없고 밖과 고립 된 저녁 키림사..
신비로워진 관음전의 조명.. 뭔가 이 큰 절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아서 무서워서 외로워진 마음에… 아직 하늘이 완전히 갇혀있는 것은 아니지만, 꽤 어두워진 사원을 걸으면서.. 삼성각과 명부전 후 미지의 건물에 불이 붙어 신발이 놓여 있었는데 누가 있을까? 야간에 배회해서는 안 된다는 청규가 있었던 것이 기억되어 방사로 돌아왔다.
많은 소리가 나와 보면, 초파일을 준비해 남은 신도들인지는 모르지만, 많은 것이 먹고 소란스럽게 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에 적은 위로가 되어 나도 내 방에 들어갔다.
키림사의 방사에는 학습만화로 시작되어 불교에 대한 책이 5,6권 정도나 놓여 있다. 방으로 돌아가서는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99년도식 학습만화를 한 권 보고 템플스테이를 설명하는 책을 보고 10시쯤 제대로 잠들었다. 6. 아침 공양, 사시 불공 소실은 새 예금에 참석하기 위해 4시 10분에 알람을 맞춰 놓았지만, 전날 등산을 하고 있는지 아, 너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알람을 아침 공양 직전에 맞추고 자고 자고, 비몽사몬 아침 공양을 먹으러 갔다. 역시 나 혼자였습니다. 템플스테이에서 공양을 할 때 이 음식이 내 앞에 놓일 때까지 모든 수고에 감사하겠다는 말이 있지만 적어도 내가 일어나기 전 1시간 전에 이 음식이 준비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먹고나서도 아직 잠을 더 자고 싶어서 방사로 돌아가 씻고 9시까지 1시간 정도 자고 있었다. 문을 열어 두고 방충망만 닫아 자면 상쾌한 공기 속에서 정말 좋았다(내가 자는 모습을 정원에 전시). 조금 차가울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불로 몸을 감싸고 싸게 자면 딱이다. 새벽 예비보다 사시불공(10시)에 참석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모든 절이 매일 아침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시간을 맞추고 대적광전에 출두했더니 시작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신도들도 몇 분 왔고 저녁 예불보다 외로웠다. 특히 매우 관대한 보살의 한사람이 모두를 아주 잘 따르고 있었습니다만.. 내가 옆에 보살의 책을 예쁘게 보았으니까 법요집도 한 권 가지고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것을 보고, 또 열심히 읽고, 인사를 할 때 끊임없이 일어났을 때 일어났다. 그런데 역시 후에는 내가 모르고, 법요집에도 암 나오는 부분이 나오기 시작하고 잘 따르지 않았지만… 나중에 다시 사람들의 이름 주소를 튀는 부분이 나올 무렵에 나와 다시 언제 올 수 있을지 모르는 키림사를 걸었다. 이번 내 결론은 : 템플스테이에서 절 생활을 충분히 경험해보고 싶습니다만, 새벽의 예비 시간대가 조금 어려운 경우는, 사시 불공연을 실시해 일반 신도들과 섞여 사시 불공연에 참가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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